끄적임 공간

오늘의 날씨 : 오늘은 하루종일 분노의 비가 내립니다

레이21 2022. 3. 2. 23:21

오늘의 글을 지극히 화가 많은 글인 점 죄송합니다.

 

이 회사 다니면서 이렇게 화가 나본적이 있어나, 싶을 정도로 분노가 솓아올랐던 하루다. 피가 거꾸로 솓는다는 걸 몸소 체험한 하루다. 지금은 괜찮냐,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괜찮지 않다. 나 혼자 만이 아닌 전체 대상으로 뒷통수를 친 분들에게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떠오르는 동시에, 이제는 더 이상, 정말 더 이상 설탕 발린 말에 속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왜 나는 지금, 이렇게 분노를 느낄까? 삐쭉삐쭉 솟아난 마음을 헤쳐본다. 차마 글로는 쓸 수 없는 육두 문자가 가득한 머리 속을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첫번째는 괘씸함이다. 지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나아지겠지, 힘든 일을 더 했고,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다음 결과에 반영되겠지, 누군가의 뼈깎는 고통으로 지금을 만들어낸 것을 알아주겠지, 라는 믿음. 그렇다. 그것은 알량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가 받은 건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이 아닌 80%의 변명 그리고 10%의 위로 그리고 숨겨진 10%의 진심이었다. 

니네가 열심히 한 거, 음 모르겠고, 우리도 힘들어, 그러니 너희는 우리를 이해해. 지금까지 그랬으니, 이해하지? 다음에 더 나아질거야.

그렇다. 앞에서는 나아질거야라고 거짓방귀를 뀌면서 뒤에서는 계산기 두들겨대며 계산해서 기존에 이해했으니, 앞으로 좀만 더 이해해줘~하고 통보해버린다. (기존에 한번도 사용하지 않던 채널로 이 소식을 통보한게 대 웃음 포인트다.) 외부 채널로는 인사이트 넘치는 척 잘난척, 앞서가는 척, 고객을 위하는 회사는 여기밖에 없는 척하면 뭘하나.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온 사람을 굴러온 돌 취급하고, 내부 고객을 개차반으로 여기고, 자신을 떠받드는 시중들만 원하는데. 

두 번째는 그들의 앞과 뒤과 다름을 뻔히 그동안 온 몸으로 익혔던 내가, 그 개선되리라는 사탕발림을 결국은 믿었다는 것. 왜? 그래야 나아지니까 지금을 조금 더 힘내자, 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부터 믿어서가 아니라, 믿고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어쩌나. 결국 외부 그리고 내부에게 동시에 뒷통수를 맞으니, 처음에는 이게 무슨일이람? 하면서 어안이 벙벙하다가 그라데이션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뒷목이 아픈 것이다.

그들의 말, 언젠가 나아지겠지, 언젠가 개선되겠지 - 라는 말을 믿지 않는 척 했으면서 사실은 믿고싶었기 때문일까? 결국 오늘의 이 분노는, 믿어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기만한 누군가의 진실과 믿으면 안될 누군가를 기어이 믿은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합쳐져서 나타난것만 같다. 저번에는 화가 나면 뛰었는데, 오늘은 그럴 기운도 없다. 화가 난 개를 달래듯이 요동치는 내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보는 수밖에 없다. 글을 쓰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분노의 해상도가 높아만 지고 있다. 

과연 내가 말한다고 달라질까? 하지만 이미 나는 안다. 바뀌지 않으리라는것을. 이 조직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짜피 이직 준비하는데 몇 개월 걸릴게 뻔하니, 당장 다음달까지 바쁠게 뻔하지만 이력서 한 두줄 더 추가한다고 생각하고, 오직 나를 위한 몇 달을 보내야지.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는 것, 정말 가능하면 이제는 멈추고 싶지만, 이 회사에서의 참을인 세 번 게이지는 다 채운 것 같다. 어짜피 내년 계획에 현재 회사는 없었으니 계획을 조금 빨리 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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