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모든 결과가 정해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던지는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아 오늘도 돌을 던지네, 하고 흘려보냈을 텐데, 오늘은 화가 났다. 메신저 상에서 띡 전달 온 메시지. 보는 순간 멍 - 한 감정이 들었다가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뒷골로 스멀스멀 부정적인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 화났구나.
하지만 화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미 늦은 오후였고, 내가 해치워야 할 일이 많았다. 빠르게 남자친구에게 현재 느끼는 감정을 써서 보내고, 화장실에 가서 잠시 혼자있는 시간을 가지고, 동심의 세계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를 들으며, 다시 업무를 했다. 해치워야할 일들을 해치우니 퇴근 시간은 이미 지난 시간. 나가기 전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친구에게 바로 카톡을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더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하기로 한다. 지하철에서 절반 가량 서있다가 앉아서 멍 때리고, 유튜브를 봤다. 그리고 고민의 시간, 저녁은 뭘 먹지. 떡볶이를 먹을까, 샐러드를 먹을까, 초밥을 먹을까? 오늘은 이것저것 보게 마트를 가볼까, 하고 마트로 간다.
마트로 가는 과정, 그리고 장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오늘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싫은 장면을 돌이키려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니 오늘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포인트를 찔렀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지적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이것이었다. - 내가 한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자기는 말을 했는데, 내가 안 했다고 말하는 것, 이거는 나를 동요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시간을 들여서, 고민하면서 한 일의 과정을 싹 무시한 오늘의 포인트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약 한달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고 그 날에 대한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탄내를 느낀 하루) 그 때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착잡함이 컸다면, 오늘은 화가 났고, 그리고 실망했다. 아무리 내가 무언가를 해도 이게 저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좋은 결과'가 아니면 그 책임을 나한테 돌리는구나. 물론 그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평소에 했던 말들은 그냥 껍데기에 불과했구나, 조금은 그 말에 기대했던 나였던 것 같다. 감정 소모가 없는 곳은 없다지만,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아마 나는 좀 더 빠르게 지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 이런 날이 있다. 지치고 화가 나고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날.
이럴 때 찾아갈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매직샵'이라고 부르는데, 좋아하는 노래에서 따온 말이다. 불과 몇달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이 매직샵을 외부에서 찾았다. 그러니까, 기존에 있던 문제를 그냥 회피했다. 그리고 그 회피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면, 앓다가, 도망쳤다. 하지만 이제는 무작정 도망치기에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이제는 매직샵을 내 안에서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결국 언젠가 같은 일이 생길 것이고 (왜냐하면 한달 전에 생긴 일이 결국 오늘 또 발생한 것이니까), 언제까지 같은 행동을 보일 수는 없다. 더 나은 방안을 찾아야한다. 최대한 내 안에서 방안을 찾아봐야한다. 그래서 나의 매직샵에 들어가서, 다음의 4가지를 했다. 1)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을 다시 마주보기 2) 요가하기 3) 헤드폰으로 좋아하는 노래 크게 틀어서 듣기. 4) 엄마한테 통화하기.
음, 괜찮았다. 어느정도 풀리고,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오면 오늘 보다는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다음 스텝은 역시, 미리 준비해둬야겠다. 매일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을 오래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음가짐을 다시 단단히 가져야겠다. 적어도 온전한 나만의 무기를 만들기 전까지는, 흘려보내고 있다가,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오늘의 다짐이다. 몇 달 전의 나보다 좀 더 단단해진 것 같아서, 조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오늘 힘들었지, 고생 많았다. 수고 했다. 사랑한다. 매직샵에서 하루를 마무리해본다.
내가 나인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 속에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곳이 기다릴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줄 Magic shop
방탄소년단 <Magic shop>
https://www.youtube.com/watch?v=hLf6yZPJy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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