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공간

휴식의 시간 - 할아버지 집에서

레이21 2021. 9. 20. 17:53

오늘도 어제 처럼 오늘도 부모님을 따라 걷고 걸었다. 다른점은 어제는 해가 진 저녁에 걸었다는 점이고, 오늘은 꽤나 햇빛이 강렬한 3시에 움직였다. 움직이는 목표는 하나, 내일 추석 당일 오전에 간단하게 지낼 제사상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가는 것. 시장 한복판에 오니 정말 내가 어릴때나 보았던 시장 풍경(하지만 코로나+추석연휴전이라 다소 한적한)이 펼쳐지고, 떡집은 수많은 송편을 자랑하듯이 매대에 내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하얀색, 초록색, 보라색(자색 고구마를 섞었다고 한다) 송편까지! 몰려드는 사람들에 빠르게 송편을 사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그 외에도 마트에서 제주, 간장, 라면 등 그 외 필요한 식자재류를 샀다. (4년 전 대비 정말 간소해진 제사 준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오후의 햇살은 꽤나 강렬해서 햇빛을 막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를 꽁꽁 둘러싸매고 휴대폰으로 햇빛을 가리며 걷고 걸었다. 도시 한복판에 살다가 시골에 오니, 정말 예전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시골 모습이 꽤나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한복판에서 읍내 아파트가 많이 들어온 곳으로 들어오니, 최근 2-3년 간 프랜차이즈 음식점들도 많이 들어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이 집은 '할아버지 집'이다. 왜냐하면 원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집이었는데, 할머니는 약 7년전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혼자 사셨던 집이기 때문인지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할아버지 집'으로 불려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참 자상하고 재밌는 분이셨다. 유머러스하고, 여러가지 조언도 해주시고, 가끔 전화를 거셔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참 마음도 건강하신 분이셨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할아버지의 부재, 4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집을 처분하지 않고 가족들이 모여서 명절을 보내거나 혹은 가족 누군가가 쉬러 오는, 우리 가족의 별장 같은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주 오진 않지만, 명절 때 마다 제사를 지내러 오거나 혹은 연휴와 같이 긴 휴식기에 부모님과 함께 와서 쉬는 집이라서 그런지, 이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해도 잠도 잘 오고 평안한 느낌이 든다.(강의를 들어도 자꾸 눕게 된다) 특히 서울 집에 비해서 집 면적이 넓고 바람도 잘 통해서 서울 보다는 탁 트임을 많이 느끼는 집이다. 최근 부모님이 노후를 준비해본다고 작게 농사를 시작하셨는데, 새벽나절에 나서서 농사를 짓고, 땡볕이 되는 오후가 되기 전 이 집으로 돌아와서 작물들을 정리하고, 말려야할 것들은 말리는 등등의 작업을 진행하셨다고 한다. 

조금 더 시일이 지난 후에도, 이 집에서 머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나선다면, 그때는 이 집과 안녕을 고해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그 때가 되면 이 집과 헤어져야하지만, 우선은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이 평안함에 머물기로 했다. 평안한 오후가 지나고 연휴도 지나가고 있다. 아직 남은 휴식의 시간 속에 좀 더 머무르고 멍을 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