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공간

내가 만난 모든 사수들에게

레이21 2021. 10. 9. 18:18

눈 뜨고 코는 안 베이고 '사수'가 된 이야기 

이직을 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함께 일하던 분이 없어져서 혼자 일을 하게 된 지 어연 3개월, 혼자 (외롭게)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생긴 회사의 변화로 인해서, 누군가는 퇴사를 하고, 나에게는 후임이 생겨버렸다. 사전의 준비도 없이(?) 함께 하게 되어서 우선 가득 쌓인 나의 일을 덜어주며 일을 함께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업무에 필요한 개념 공부와 프로세스, 그리고 해야할 일들을 정리해주고 싶은데, 막상 업무시간은 전쟁처럼 일을 하므로 방전이 되서야 '아 맞다 그러기로 했지' 하고 떠오르는 것이다. 후임을 케어해야하다 보니, 갑자기 나의 과거의 사수들이 떠올라서 적어보는 글쓰기. 

저의 사수였던 분들, 잘 지내시나요?

사수가 짓는 어색한 미소, 일을 알려주는 스타일의 차이(기본부터 알려주는지, 그런 것 없이 그냥 바로 일 시키는지 등등), 밥을 잘 사주는지 아니면 안 사주는지 등등, 참 세상에는 여러가지의 사수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오비완 케노비와 같은 사수가 주는 일과 가이드를 받아서 열심히 하는 스카이워커인 셈이다. (인턴 경험은 제외한) 첫 회사에서의 사수는 좀 묵묵한 여자 사수였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밖으로 욕을 하기 보단 묵묵히 참아내는 사람.(물론 친한 동료분에게는 욕을 했겠지만), 그때는 몰랐지만(무뚝뚝하게 가르쳐줘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친절하게 일을 알려주는 타입이었다고 생각한다. 싸이코 클라이언트 때문에 고생하시다 퇴사하신 사수분, 잘 지내시나요?

병아리는 닭이 된다

평생 사수만 모시며 살 줄 알았는데, 이젠 내가 사수라고? 첫 회사에서 약 1년이 지났을까, 새로운 클라이언트 업무를 맡게 되어서 4명의 셀이 구성 되었는데 새로 들어온 신입과 다른 팀에서 온 분이 어느순간 내 후임으로 탈바꿈되어있었다. 참 당황스러웠다. 나도 가이드를 받고 일하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요청을 하고 가이드를 준다고? 내가 그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아마도 그런 모습이 후임에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일은 차고 넘쳤으므로 원래 내가 하던 일을 나눠주거나 혹은 데이터 정리는 후임에게 맡기며 '함께' 일하는 시간으로 나의 첫 '사수'의 단계에 그때 돌입한 것 같다.

그러다가 퇴사를 하고 들어간 두번째 회사는, 같이 일하는 개념이 아닌 주로 개별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업무가 진행되었고, 두 명이서 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내가 경력이 낮아서 새로운 사수가 생겼었다. 하지만 다른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책임져야했으므로, 사수 혹은 혼자 일을 해나가며 일을 했었다.

그리고 이직한 곳은 현재의 회사. 함께 일을 하다가 갑자기 나는 덩그러니 혼자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를 이끌어 주거나 혹은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는 건 마치 지갑을 두고 나왔는데 1시간 내 10km 역에 도착해야하는 것과 같은 '막막함' 그 자체를 느낄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마치 거울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상황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탑다운식 업무를 하다보니 당연히 번아웃 초기를 겪었다. 그런데, 다른 파트에서 일하던 인턴이 내 파트로 오고싶다는 의사를 밝혀서 내 후임으로 같이 일하게 되었다. 다만 이 업무는 처음이다보니 하나하나 가르쳐줘야하지만 그래도 '같이' 일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기뻤다.

사수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팀 

여전히 나는 사수가 고프다.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외부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바라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바랬던 건 업무를 해나감에 있어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 팀을 바랬던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최근 업무 환경이 OKR 중심으로 가보는 방향으로 업무 방식이 바뀌게 되어서, 좀 정신이 없지만 주간별 성과/이슈/액션플래닝을 해나가는 업무 방식으로 바뀌었다. 아직 초기라서 모두 우왕좌왕하지만, 일단 1개월정도 지나면 어느정도 윤곽이 보이겠지? 그래서 원래 꺼내려던 이직 카드는 넣어두기로했다. 

 

어쨌든, 상황 자체가 나쁘진 않다는 것이 결론이다. 여러 시도가 진행된다는 건 더 나아지기 위한 환경을 만들려는 모두의 노력일 테니까.

이번 주의 나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