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공간

<미나리>,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에 대하여.

레이21 2021. 3. 14. 19:47

이번 주, 남자친구와 함께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제이콥, 모니카의 가족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였다. 

남편 '제이콥'은 본인의 꿈인 농사를 짓기 위해 드넓은 평지가 있는 새로운 곳(아소칸)으로 이사를 오지만, 아이들을 케어하는 모니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부가 모두 '병아리 감별' 업무를 해서 돈을 벌어야하기에,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가 함께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작은 일상의 이야기다. 

영화의 스토리는 극적이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다만, 일상에서 우리도 흔하게 겪는 말다툼,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말보다 '가족이기에'가 먼저 나오는 우리의 일상 처럼, 제이콥과 모니카가 싸우고, 낯선 할머니에게 조금 철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데이빗)까지, 보고 있으면 내가 겪은 과거의 일들과 크로스오버 되면서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보는 한편의 영화였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전개되는 숨겨진 복선, 과한 갈등,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지만, 한 가족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았다. 느리지만, 내가 살고있는 현실과 가장 닮고 현재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작게 응원을 보내는 것 같은 이야기. 

영화에서 가장 감정의 울림이 큰 부분은 모니카와 제이콥이 좀체 의견을 좁히지 못해 갈라서야 할까를 고민하는 부분과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제이콥은 모니카와의 말싸움에서 '여기에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못 이루면, 평생 똑같은 일만 해야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한다. 하지만 그에 반해 현실적으로 아이를 키워야하는 모니카는, 현실보다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는 제이콥과 좀 체 갈등이 좁혀지지 않아서 괴롭다.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미나리'이다. 할머니 순자가 한국에서 씨를 가져와서, 새로 이사온 집 뒷편 산 골짜기에 씨를 심으면서 말을 한다. "미나리는 어디에서든 잘 자라." 먹을 수도 있고, 아프면 약으로도 쓸 수 있게 유용한 미나리, 순자는 갈등하는 부부 대신 미나리를 심으며, 잘 자라길 바라본다. 

더 잘 살기 위해, 희망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가족은 이 '미나리'처럼, 척박하지만 씨를 굳게 내리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앞으로 더 상황이 좋아질지, 나빠질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어느덧 순자가 심은 골짜기에는 새로 키운 '미나리'로 가득하다. 


죽기 전에, 나만의 미나리를 심어보기. 

 

이번 글쓰기 주제는 '지금 내가 죽는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가 되는가'였고, 이 주제를 이번주 동안 고민해 본 결과, 1) 과거에 내가 했던 잘못되 선택, 그리고 2) 내가 고민만 하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 - 이렇게 두 가지 갈래로 후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했던 잘못은, 안타깝게도 돌이킬 수는 없다. 그렇기에 괴로움을 겪기도 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는 현재에 대한 다짐을 하게 만드는 반면, 2) 시도해보지 못한 부분은, 내가 현재 당장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이 참 많고, 그렇기 때문에 '글'이라는 형태로 내 생각을 형체로 만드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기존에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서 생각 정리를 하고 즉시 누군가의 조언을 들으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온전하게 내가 나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글'을 통해서 나도 내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는, 결국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원하는 분야에 도전을 할까, 말까'에 대한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곳으로 가서 조금 고생을 하더라도 도전을 하느냐, 아니면 재미는 조금 없을지언정 안정된 현재에 머무를 것인가, 나는 여전히 고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는 전자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움직일 준비가 조금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선택한 결과는, 결국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희망을 품고 미국에 왔지만 여전히 어렵게 살아가는 '미나리'의 부부처럼, 희망만을 가지고 살아가기엔 현실은 냉혹하기에, 결국 내가 마주하는 현실이 기존보다 더욱 험난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게 뻔하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을 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 한다. 

나는 아직 나만의 미나리를 심지 못하고 조금은 방황하고 있는 중이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나만의 미나리를 새롭게 심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