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공간

수술은 처음이라 - 인생 첫 수술 기록

레이21 2021. 5. 29. 20:29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5월의 끝자락이 보이고 있다. 
이번 5월은, 직장에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처음인 일들, 그리고 큰 변화들이 잦았다. 개인적인 일의 경우, 인생 최초로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애 처음 수술은 받은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4월 초, 집 근처 병원에 방문하여 진료를 받았는데, 대학병원에서의 상세 진단이 필요할 것 같다고 결론이 나게 되었다. 대학병원은 그냥 갈 수 없고, 병원 의뢰서를 받아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별도 예약을 하고 도착한 대학 병원.
떨리는 마음을 안고 진료를 기다렸고, (대학 병원에서는, 진료 전에 수납을 먼저 해야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우선 초진 때는 조금 심각한 것으로 의심되어, MRI를 빠르게 예약하여 MRI를 찍게 되었다.  MRI의 결과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일이라고 하여 10일 후로 다시 외래 진료를 잡았다. 그 시간 동안 심각한 병 일까봐 걱정되고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도 심각한 증상까지는 아니나, 수술은 어쨌든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시 기다림 끝에 가능한 수술 일정을 결정하고, 입원 수속과에 접수를 한 후 집에 터덜터덜 돌아왔다. (그 외에도 전신 마취 전 체크해야할 사항이 많아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수술 날짜를 바꾸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운 일이었고, 괜시리 마음이 허망하기도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벌써 수술이라니, 그래서 계속 마음이 다운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입원일이 다가왔고, 입원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받아야하는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결과를 확인한 후 입원 당일,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을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원 관련 설명을 들었다. 조금 기다리니 담당 교수님 오후 회진 시간이 다가왔고, 다행히도, 기존 오후 시간이었던 수술 시간이 오전으로 바뀌었다고 안내 주셨다. 수술 전 마지막 만찬이라 할 수 있는 병원 석식(죽)을 먹고 자리에 누우니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인실 병실을 쓰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뒤척임 소리가 들려왔고, 낯선 곳에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성격인 탓에 잠에 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어있었다. 

이르게 당겨진 오전 수술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수술 시간 전에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서 수술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 다음 부터는.. 긴장한 탓인지 기억이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수술실로 가기 전에 환자복을 탈의하고 수술대 위에 누웠고, 인턴 의사가 다가와서 링거를 꽂고 수술 전 체크해야할 사항을 체크했다. 하도 긴장한 모습이 보이는지, 다소 내성적으로 보이던 인턴이 걱정말라고 도닥여주기도 했지만,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간호사가 다가와서 신원 확인을 하고, 수술 들어가기 전 마지막 체크 사항을 체크했다. 그 뒤로 몇 분, 혹은 몇십분을 누워있었을까, <수술실로 옮기겠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간호사와 의사가 수술실로 내가 누워있던 침대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술실에 입성한 순간, 의학 드라마를 잘 보진 않는타입이지만 어디선가 본것 같은 수술실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수술실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수술대 위로 옮긴 후, 수술 중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수술대에 있는 여러 벨트들을 사용해서 꽉, 나를 침대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또 다시 신원 체크, 몇 가지 체크를 하고 다시 분주하게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내 머리위로 다가왔다. 내 마취를 담당해주실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었고, 그 분이 마취제가 들어있는 기구를 내 입에 대며 호흡을 하라고 요청했다.

 개인적으로 이 마취 경험은 아직까지 미스터리하게 남아있는 데, 4번 정도 들숨 날숨을 했는데 '왜 잠에 안 빠지지?'하고 생각한 순간, 잠든 기억도 없이, 간호사의 부름으로 나는 잠든 기억이 없는데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온몸에 총을 맞은 듯한 고통으로 가득했고, 수술실에서 병실까지 어떻게 옮겨왔는지 기억이 없다.

병실에 도착한 순간부터 아픈 증상이 커지기 시작했고, 고통에 힘든 소리를 내면서 무통 주사를 맞았지만, 고통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아서  병실에 누가 있던 신경도 못쓴채 끙끙대며 고통스러워 했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도착한 시간이 약 11시 30분이었다고 들었는데, 수술 당일에는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후, 마취 가스가 배출되어야해서 2시간을 잠들 수 없었는데 여러모로 힘든 시간이었다. 상주 간병인으로 와있던 부모님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생 첫 수술이 마무리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안도했다. 수술 다음날, 물론 여전히 아팠지만 그럼에도 걸어야지 빨리 몸이 회복된다고 하여 링거를 가득 꽂고 다닌채 병원 복도를 힘든 걸음으로 돌아다녔다. 일명 '산책'이라고 부른 이 병실 복도 훈련(?) 이 끝나면 침대에 누워 잠에 들고, 짧은 잠에서 꺠면 다시 산책을 하고, 이런 시간이 반복되었다. 확실히 수술 당일 만큼은 아프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몸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숙제가 있었다. 바로 몸이 회복되었다는 표시인 '가스'가 나오게 해야하는 것. 하지만 열심히 산책한 것 대비, 아쉽게도, 가스가 나오지 않았고 - 나오기 전까지는 물도, 음식도 한 입도 먹을 수 없었으므로, 포도당 링거만 맞은 채로 2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원래의 퇴원일 새벽에 겨우 작은 가스가 나왔다! 너무 기뻤는데 그 시간이 새벽 2시여서 잠든 부모님을 깨우지 못하고 간호사에게 가서 상황을 보고했다. 
 늦게 가스가 나온 탓에, 병원에서 하루 더 입원하며 경과를 살펴야했고, 그렇게 병원에서의 하루가 또 빠르게 흘러갔다. 다음 날, 교수님 회진 때 퇴원해도 된다는 확인을 받고 퇴원 준비를 했다. 여전히 몸은 무겁고, 아팠지만 이제는 시간만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총 4박 5일의 병원 생활이 끝나서, 다시 현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직까지 몸이 회복기에 있는 상태에 있고, 이 일을 계기로 삶에서 '건강'의 중요성을 깊게 깨우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외가 가족들로부터 걱정의 전화와 카톡을 많이 받아서 마음이 찡했다. 특히 큰이모가 '나도 받았던 수술인데 괜찮아, 위험한 거 아니야'라고 말씀해준게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또 추후에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우선은, 마음이 조금 급하더라도,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의연하게 생각하고 조금 느리게 가는 시기를 보내야겠다. 

건강하다는 것에, 살아 있다는 것에, 그리고 함께할 소중한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