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공간

무제

레이21 2021. 9. 9. 23:28

정확히 4일 전에 무기력에 대한 글을 썼다. 오늘 또 다시 찾아온 무기력증. 최근 들어 극강의 '인생 노잼'을 느낀 날이었다. 재미 없어, 라는 말을 가능하면 안 하고 싶은데, 오늘은 내뱉었다. 재미 없다. 

오전에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작된 언쟁 아닌 언쟁을 했다. 결국 '추후 고민해보겠다'라고 말하며 대화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그냥 내 할일을 체크했던 것이 어쩌면 잘못된 첫 단추였을 수 있다. 오늘 일들은 전반적으로 '미적지근'했다. 해야할 일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결국, 혼자 되는 일이 아니기에 관련 메신저 방을 개설하고 서로 업무를 체크하고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업무 자체가, 빨리 내가 해야할 파트를 끝내는 의미의 일이 아니고, 어떻게 해나갈지 '눈치껏' 해나가야 했다. 좀 더 예전같았으면 초조하거나 긴장되었었겠지만, 이제는 그렇진 않다. 재미 없었다. 

그렇게 오후까지 조금은 중구난방으로 일을 하고, 다른 사람한테 인계하는 일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고(사고가 일어나지 않기위해) 다른 업무 중 체크할 것이 있나 확인하고, 또 아까 오전에 있었던 진행 건을 체크하고, 넘겨야할 자료를 넘기고, 다음주에 한번에 진행 필요한 일들을 체크하고, 이런 미적지근한 과정이 퇴근 시간 전까지 이어졌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일맺음의 처음과 끝이 모호하여 'A 업무 끝'이라고 표기를 할 수 없었기에, 더욱 '늘어지는' 기분을 겪었던 것 같다.

퇴근 후 다른 동료와 퇴근하면서 얘기를 나누면서 오늘 느낀 여러 생각들이 해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고민거리로 남았고, 그 짐은 오늘 찾아온 재미없음, 무기력증에 또 하나의 짐을 얹어준 셈이었다. 이런 꿀꿀한 감정은 집까지 짊어지고 왔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진 채 오후 11시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보상 명목으로 맛있는걸 먹거나, 아껴둔 예능 영상을 보거나 해도 오늘 느낀 이 짐은 지워지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지금 왜 이런 감정을 느꼈는가에 대해서 내 안의 생각들을 살펴보았다. 우선은 '답답함'이라는 감정의 비중이 컸다. 
- 누구도 나를 케어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눈치껏 일을 해나가야하기 때문인가?
-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즉 체계를 만들어나가야하는 환경 속에서 총대 매기 싫어서 관망하는 스스로를 자처했기 때문인가?
- 내가 원하는 것, 혹은 해야할 것 같은 방향은 묵살되기에 의견을 제시하기도 전에 반 정도 포기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해야했기 때문일까? - 어떤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이미 겪어본 현실 속에서 어짜피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적응해나가는 '나'가 갑자기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생각에 꼬리를 문다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몸에 징조가 나타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데, 결국 마주해야한다. 좀 더 내 마음 속 엉켜있는 생각들은 다른 장소에서 써봐야겠다. 오늘의 어지러운 글쓰기는 끝.